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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유적지 사찰 추천 Best 17 본문
2020. 01. 16
온달동굴
온달동굴은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수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본래 남굴 또는 성산굴이라고 불렸는데, 일대에 온달 관광지가 만들어지면서 '온달동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생성 시기는 약 4억 5,000만 년 전이며 길이가 800m에 이르는 석회암 천연동굴이다. 1m 깊이의 물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어 물소리가 굴 안을 울린다. 작은 연못도 40여 개나 된다. 여기에 서식하는 산천어와 10여 종의 곤충도 진기한 구경거리다. 동굴 내부는 늘 15℃ 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상당산성
사적 제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은 청주 시민들의 쉼터로 산성 주변에 꽃나무들이 많아 화사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산성이 축성된 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7세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인 김원정이 서원술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지금의 상단산성이 된 것으로 전한다. 임지노애란 때 조금 수리르 하고 숙종 때 지금의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신성의 둘레는 4.4km, 높이는 4~5m로 안쪽에 흙을 쌓고 바깥쪽에 돌을 쌓는 이른바 내탁공법으로 축조되었다. 1977년 남문의 문루를 비롯하여 산성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였다. 성 안에는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숙종 때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가 있다.
삼년산성
충북지역은 삼국시대에 치열하게 벌어졌던 영토 전쟁의 현장이라 산성이 많다. 그중에서 보은의 삼년산성이 가장 유명하다. 3년에 걸쳐 쌓았다고 하여 삼년산성이라 불리며, 470년에 축성되었다고 전한다. 660년에는 신라 무열왕이 이곳에서 당나라 사신의 하례를 받았다고 하며, 918년에 고려 태조는 후백제 소유의 이곳을 공격하다 크게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성의 둘레는 1,680m, 높이는 13~20m에 이르며 수직으로 쌓아서 위에서 보면 공격하고 싶은 맘이 싹 사라질 정도로 견고한 요새이다. 성 안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조선시대까지 꾸준하게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지금은 보은 지역의 유명 명소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답사를 겸한 산책 코스로 딱 적당하다. 특히 단풍이 절정인 삼년산성의 가을은 더욱 아름답다. 보은에서 속리산 가는 길목에 있어 접근성도 괜찮으며 보은읍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다.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 (553년)에 창건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비로를 받아 매우 번성했던 사찰인데, 지금도 국보급 문화재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높이가 무려 33m에 이르는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을 비롯해 쌍사자석등, 석련지,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상 등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법주사 입구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절 마당까지 이어지는 단풍터널은 걷는 내내 탄성을 자아낸다.
[속리산] 법주사 단풍여행
2019. 11. 03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날은 가까운 산에 올라가서 해소하곤 한다. 그곳이 문장대이다. 오늘은 단풍시즌이기도 하고 가족끼리 법주사에 가서 단풍 구경을 갔다. 역시 단풍 시즌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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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가야산 남쪽 덕숭산 자락에 자리한 수덕사는 백제 시대 고찰이다.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며, 경내에서 백제시대 와당이 출토되어 그 시기를 가늠케 한다. 법당인 대웅전은 고려 후기 건축물로 안에는 연등을 달지 않는데, 이는 소망이나 기원보다는 수련을 더 중시하고자 함이다. 또한 수덕사는 우리나라 선불교 중흥에 기여한 승려들이 많이 배출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추사고택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대표적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다. 264㎡의 공간에 문간채와 사랑채, 안채와 사당이 들어서 있고, 방 곳곳에 호롱불과 지필묵 등 추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랑채 댓돌 앞에는 석주가 하나 있는데,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라고 한다. 추사가 직접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큰 볼거리나 흥밋거리는 없지만, 정갈하고 소박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해지는 곳으로 주변 정비도 잘 되어 있어 고택 근처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반나절 쉬었다 가기에 좋다.
공산성
공산성은 백제의 왕궁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475년 고구려의 공격에 위례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시해되자, 그의 아들 문주왕은 도읍을 웅진(공주)으로 옮겼다. 공주는 부여로 국도를 천도한 538년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공산성을 둘러보는 데는 보통 1~2시간 정도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금서루, 만하루로 이어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성곽을 따라 난 산책로다. 금서루, 만하루에 오르면 발아래로 찰라이는 금강을 볼 수 있다. 공주토박이들이 공산성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한다. 산책로를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특히 해질무렵이 운치 있다고 소문났다.
마곡사
마곡사는 봄이 아름답다. 그렇다고 벚꽃이 흐드러진 봄 풍경을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은 꽃이 아니라, 계곡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해야 옳다. 마곡사는 계곡과의 아름다운 조화로 유명하다. 마곡사를 끼고 있는 태화천이라는 계곡은 이름처럼 태극 모양으로 휘어져 오른다. 웅장하거나 풍부하진 않지만 정겹고 편안하고 청신한 느낌을 주는, 그래서 딱 봄을 연상시키는 계곡이다. '마곡'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설법을 들으러 오는 신도들의 모습이 마치 마를 세워둔 듯 빼곡해서 붙은 것이라 한다. 지금은 갑사나 동학사에 비해 명성이 덜하고 관람객도 적은데, 덕분에 오붓하고 한가하게 마곡의 봄을 즐길 수 있다.
계룡산 갑사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가 볼 만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갑사의 가을 풍경은 유명하다. 갑사의 단풍은 내장산처럼 붉게만 물드는 단풍이 아니다. 윤노리나무, 쇠나무, 풍게나무, 비목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저마다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자태를 뽐내는 단풍이다. 해탈문 앞에 선 감나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색시 얼굴 같은 감이 해탈문의 고운 단청과 어우러지면 갑사의 가을은 한결 깊어진다. 갑사는 가을 풍경뿐 아니라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로도 이름이 높다. <월인석보> 판목을 비롯해 철당간 지주, 부도, 동종 등이 유명하다.
동학사
계룡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동학사는 갑사와 더불어 계룡산을 대표하는 절이다. 조선 세조 때 사육신과 단종의 제사를 몰래 지냈으며, 세조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업보를 뉘우치는 뜻으로 왕위 찬탈 과정에서 희생된 280여 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초혼제를 지내기도 한곳이다. 그 후 왕실의 지원으로 제를 지내며 초혼각을 세우면서 동학사는 절과 유생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절 입구에 특이하게도 홍살문이 있다. 한국 전쟁 이후 재건해 오늘날에 이르며, 비구니 절로 경내가 매우 깨끗하고 정갈하다. 갑사에 비하면 절의 규모는 작지만 깊숙한 산골에 자리해 있고, 계룡산에 안긴 절 가운데 인지도가 높아 계룡산 하면 동학사를 떠올릴 정도이다. 동학사에서 은선폭포 길을 통해 신원사로 내려갈 수 있으며, 남매탑과 삼불봉을 거쳐 갑사로 내려가도 된다.
부여 고란사
고란사는 백제 사비(부여) 왕도로 전하는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 가에 있다. 백제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기록은 없으며, 왕궁의 내불전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절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1028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전한다. 고란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자란다는 신비한 약초 고란초와 고란약수로 유명하다. 법당 뒤편 바위에서 나오는 고란약수를 마시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궁남지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백제왕궁의 정원으로 무왕이 왕비 선화공주의 향수를 달래주고자 배를 띄우고 같이 노닐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동그란 연못 가운데로 섬을 띄워 포룡정이란 정자를 세웠다. 백제의 정원조성기술은 신라와 일본에 크게 영향을 줄 정도로 매우 우수했으나, 남아있는 백제 정원 유적은 이곳 궁남지 뿐이라 많은 아쉬움을 준다. 연못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 포룡정까지 건너갈 수 있으며, 연못 주변으로 긴 머리카락을 연못 방향으로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궁남지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궁남지 주변으로 연꽃이 가득한 연지가 조성되어 여름이나 가을이며 그 절정을 구경할 수 있다. 주변으로 정림사지, 부여국립박물관, 군수리사지 등의 문화유산이 가득하여 볼거리도 풍성하다.
관촉사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의 화랑 관창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황산벌, 그 나지막한 언덕에 논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관촉사가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동양 최대의 석조불, 은진미륵이 있다. 은진미륵의 높이는 자그마치 18m. 그러니까 웬만한 5층 건물 정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석불 앞에는 미륵전이 있는데,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정면에 창을 뚫어 은진미륵을 보도록 만든 게 특이하다. 예불할 자리에 앉으면 은진미륵의 얼굴 부분이 창을 채우는데, 그 절묘한 배치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은진미륵 앞에 있는 석등도 볼거리다. 높이 5.45m, 둘레 4m로 남한에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크다.
금산 보석사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보석사는 그이름처럼 보석들이 여럿 있다. 전나무 숲과 1,0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 그리고 많은 문화유산이 그 것이다. 옛날에 이곳에서 금이 나왔다고 하여 보석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신라 후기 조구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1,000년 된 은행나무가 매우 유명한데,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큰 소리로 울었다는 전설이 깃들어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가을에는 절정에 이른 전나무 숲과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경내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의선각, 의병승장비 등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로 백제 후기에 조성되었다. 암벽을 파서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에 전실을 설치한 전형적인 마애석굴의 형태로, 신라 후기에 조성된 군위 제 2석굴암과 경주 석굴암의 모델이 되었다. 마애불 중앙에는 석가여래입상이, 오른쪽에는 생각에 잠긴듯한 반가사유상, 왼쪽에는 보살입상이 자리해 있는데, 이들 모두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통한다. 마모가 심하고 돌이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 등으로 비록 예전만은 못하지만, 삼불의 후덕하고 부드러운 인상과 살짝 위로 올라간 입매는 보는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를 번지게 할 만큼 아름답다.
개심사
개심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우리나라 5대 명찰의 하나로 꼽은 절이다. 충남 4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 의자왕 때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대웅전을 떠받들고 있는 기단은 백제시대 것으로 그 위로 1484년에 중창한 보물 제 143호인 대웅전이 있다. 절을 중심으로 숲이 우거져 있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4월 즈음해서는 벚꽃이 가득 피어나 절주변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데, 마치 속세의 시름을 잊은 신선세계와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개심사에서 등산으로 산 건너 용현리계곡에 자리한 보원사터와 서산마애삼존불로 넘어갈 수 있다.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낙안읍성과 더불어 평지에 자리한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평지 읍성이다. 해미는 조선 태종부터 효종까지 약 240년 동안 충청도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읍성은 1421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은 1866년 이후,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을 처형시키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천주교 박해지로도 유명하다. 신자들을 무수히 목매달아 죽이던 오래된 회화나무(호야나무)가 성내에 있어 그 아픔의 흔적을 보여준다. 게다가 일일이 처형하기가 힘든 나머지 읍성밖에 큰 구덩이를 파고 아예 생매장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비명과 곡소리로 넘쳐나던 해미읍성은 우울한 과거를 털어버리고 지금은 휴식과 역사 공부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약 2km에 이르는 성곽을 따라 걷노라면 너른 들과 야트막한 주변 야산들이 아픈 역사를 보듬듯이 정감있게 다가선다. 주말이면 주변지역에서 찾아오는 나들이객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북적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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