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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유적지 사찰 추천 Best 23

여행남 2020. 1. 31. 13:11

2020. 01. 31

 

군산 동국사

 

전북의 해양 관문인 군산은 구한말에 개항된 항구도시의 하나이다. 개항된 도시에 걸맞게 서구식 건물이 많이 들어섰고, 일본인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근대 문화유산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로, 군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1909년에 세웠다. 본래 이름은 금강사인데, 1970년 해동대한민국의 약자인 동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본식 사찰은 해방 이후 모두 파괴되었으나 동국사만 유일하게 남아 어둠의 시절을 상징하는 뼈아픈 역사의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요사와 이어진 대웅전은 일본의 에도시대 건축 양식을 띠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어있다.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 1718호인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이 있는데, 이는 해방 이후 금산사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인구 60만을 지닌 전라도의 오랜 중심지, 전주 시내 한복판에 시간마저 주춤거리는 한옥마을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전주 도심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고자 전주 토박이들이 한옥을 지어 살던 것이 지금의 전주 한옥마을이 되었다. 한옥이 약 900여 채 모여 있으며, 형성된 시기는 100년도 되지 않았으나 굳건한 민족 정신이 고이 담겨져 있다.


금산사

예로부터 여름에는 변산, 가을에는 내장산, 겨울에는 백양산, 봄을 대표하는 모악산 입구에 전북 최대의 사찰 금산사가 서 있다. 봄철이면 산입구에서 사찰까지 늘어선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금산사는 우아하고 단아한 매력을 갖고 있다. 금산사는 유독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인연이 많다. 견훤이 국가의 원찰로 삼았을뿐 아니라 훗날 자신의 아들 신검에게 유폐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드라마 <태조 완건>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내소사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두타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내소사의 전신인 소소래사만 남았다. 매표소를 지나면 내소사의 자랑인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전나무 향기가 가득한 매력적인 산책로로 경내에 다다르면 8~10월에 피어나는 연꽃, 수련이 가득한 연못이 나온다. 경내에는 보물 제291호인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고려동종과 영산회괘불탱화, 삼층석탑 등의 지정문화유산이 있으며, 특히 대웅전은 포가(지붕을 받치는 나무토막) 하나 모자란 채로 지어진 건물로 유명하며, 건물을 만든 목수와 관련된 재미난 전설이 있어 내소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킨다.


선운사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가수 송창식의 노래가 아니어도 선운사의 동백꽃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대웅전 뒤를 병풍처럼 에워싼 동백나무 군락은 쉽게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인 풍경이다. 선운사가 동백꽃으로만 유명한 건 아니다. 꽃무릇이 붉게 달아오르는 초가을부터 단풍이 운치 있게 물들기 시작하는 11월 초 사이에도 선운사의 경치는 빛을 바란다.


내장사

내장사는 호남의 금강으로 일컬어 지며 내장산 자락에 안겨 있는, 전북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내장산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주변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이면 20여 종의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단풍이 아름답기로는 가히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곳이다. 단풍철 휴일이면 가는 길은 물론이고 주차장까지 꽉 막혀, 그야말로 단풍 반, 사람 반인 풍경이 빚어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단풍을 보려면 이만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는가 보다.


장수 논개사당

논개는 장수를 대표하는 의인인 장수 3절의 하나로 장수 지역의 상징이자 자랑이다. 논개를 기리고자 1954년에 부통령인 함태영의 지원으로 남산공원에 그녀의 사당을 세웠으며, 매년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해 이곳에서 큰 제례를 지낸다. 논개는 장수 주촌에서 태어났는데, 최경회의 부인이 되어 진주성에 있다가 1593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군이 촉석루에서 벌인 승전연에 참석, 왜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해 순절했다. 논개사당에는 논개생향비란 오래된 비석과 전시관이 있으며, 제일 높은 곳에 사당 본전이 있다. 또한 사당 앞에는 두산제라는 넓은 호수가 있어 경치 또한 아름답다.


광한루원

광한루는 전북을 대표하는 누각이자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광한루 앞 연못에 걸린 오작교에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진다. 속설에 따르면 부부나 연인이 이 오작교를 밟으면 금실이 더욱 좋아진다고 한다. 광한루에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건 아름다운 풍치 때문인 듯하다. 보물 제 281호인 광한루와 연못에 가지를 드리운 싱그러운 수양버들이 단아한 풍광을 빚어낸다. 특히 춘향관 앞에서 바라보면 연못과 광한루, 오작교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말마다 열리는 국악 및 판소리 공연도 볼 만 하다.


실상사

실상사는 지리산 봉우리들이 울타리를 친 33만여㎡ 의 분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높고 고즈넉한 산이 아니라 논과 밭사이에, 인간과 세속 가장 가까이에 내려앉았다. 그래서일까. 실상사는 지역 공동체 환경 보존 운동으로 유명하다.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를 나섰던 도법스님이 이곳의 전 주지 스님이었다. 실상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가람이다. 과거 영화를 누렸던 사찰답게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지리산 사찰 가운데 문화재 보유 수로만 치면 으뜸이다. 하지만 실상사를 빛나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사람 가까이에서 소박한 삶을 실천해왔던 실상사의 가르침이 그 정답이다.


백양사

백양사는 가을 단풍으로 아주 유명하다. 흔히 '가을 내장사'라고 해서 내장사 단풍을 제일로 치지만 아는 사람은 보다 한갓지고 아기자기한 단풍을 찾아 백양사를 찾는다. 내장사가 일주문 단풍 터널로 유명하다면, 백양사는 매표소에서 쌍계루에 이르는 진입로가 매력적이다. 앙증맞은 아기단풍의 선홍빛이 계곡에 불을 놓은 듯 이어진다. 백양사는 기암괴석을 병풍삼아 양쪽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그림같은 풍경을 배경삼아 서 있는데, 두 계곡물이 합해져 만든 연못 앞에 쌍계루라는 누각이 있다. 이 쌍계루 근처가 바로 백양사 단풍의 절정이다.


소쇄원

무등산 동쪽 자락에 펼쳐진 광주호를 중시미으로 70여 개의 정자들이 자리해 있다. 그중 가장 정취가 훌륭한 곳이 소쇄원이다. 이곳은 조선 중종 때 소쇄공 양산보가 만든 별서로 소쇄란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루어, 자연 속에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심상이 묻어난 공간이다. 현재는 초가로 지은 원두막 모양의 대봉대, 사랑방 역할을 했던 광풍각, 사색과 독서의 공간인 제월당이 남아있으며, 북쪽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장 밑을 지나 소쇄원을 관통하여 흐른다. 소쇄원은 물소리로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청각적인 정원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불갑사

불갑산 기슭에 자리한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때 인도 스님이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처음으로 지은 사찰이라 전한다. '불갑사'라는 이름도 우리나라 불교의 효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불갑사는 4월에는 목련꽃과 진달래, 5월에는 백일홍이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을 정취가 으뜸이다.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 불갑사 초입에서 모악산 정상까지 등산길을 따라 꽃무릇이 지천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일주문 근처 작은 저수지 근처가 단풍을 구경하기 가장 좋은 명당자리다. 불갑사는 천연기념물 제 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참식나무는 원래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이곳이 참식나무의 북방한계선이라고 한다.


도갑사

옛말에 명산에 명찰이 있다고 했다.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에는 도갑사가 있다. 본래 해남 대흥사의 말사였는데, 그 규모가 966칸에 이르렀다니 단순한 말사는 아니었을 듯하다. 임진왜란과 한국 전쟁 탓에 예전의 영화는 덧없이 사라졌지만, 경내를 조명처럼 밝히는 달빛과 절 옆구리를 타고 흐르는 도림천 계곡만큼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매년 봄마다 만들어지는, 이일대에서 제일가는 벚꽃 터널 역시 도갑사의 소중한 보물이다. 경내에는 국보 제50호 해탈문, 보물 제89호 석조여래좌상 등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다.


미황사

미황사는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남해의 금강산이라는 달마산을 병풍처럼 휘두르고 선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눈앞에 완도부터 진도까지 다도해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땅끝도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낙조와 붉은 동백꽃 또한 미황사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이런 매력들 때문에 가장 가볼 만한 사찰로 미황사를 꼽는 사람들이 꽤 많다. 미황사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건물은 대웅전이다. 단청이 지워져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 초라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위엄이 느껴진다. 법당안은 외관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천장의 범어 글자와 일천불 벽화는 화려함을 뽐낸다. 미황사 괘불은 비를 내리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두륜산 대흥사

두륜산ㄷ도립공원 내에 있는 대흥사는 전남 남부 지역 굴지의 사찰이다. 13명의 대종사를 배출한 명찰로 조선 중기에 서산대사와 초의선사가 머물렀다. 서산대사는 묘향사 보현사에서 입적을 목전에 두고 대흥사를 병란과 기근, 질병 등 삼재를 겪지 않을 명당이라 언급하며 자신의 가사와 유물을 대흥사에 둘 것을 유언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대흥사는 지금까지 한 차례의 재앙도 겪지 않았다. 경내에는 서산대사의 부도와 유물, 천불전, 응진전 삼층석탑, 탑산사 동종 등의 문화유산이 있으며, 부속암자인 북미르암에는 국보 제 308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0여 년 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책을 집필하고,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곳이다. 약천, 정석바위, 다조, 연지석가산 등 다산 선생의 채취가 배어 있는 '다산 4경'이 남아 있다. 약천 옆에는 병풍 모양의 바위가 하나 있는데, 다산 선생이 직접 '정석'이라 새겨 정석바위라 부른다. 초당 앞에 있는 작은 돌은 다산 선생이 차를 끓이던 곳이라 해서 다조라고 한다. 주변에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다산 선생이 흑산도로 귀양 간 둘째 형을 그리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구강포의 너른 바다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빼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운림산방

진도에 가면 화장실에도 그림이 걸려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진서화 예술이 발달했다는 진도 지방에서도 성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소치 허련의 화실이다. 그뿐 아니라 아들 허형과 손자 허건이 태어나고 남화의 꽃을 피운 곳이다. 건물은 점찰산 서쪽 봉우리를 담장 삼아 날렵하게 지어진 'ㄷ'자형의 기와집이다. 연못 중간에 작은 인공섭이 있고 그 안에 큰 배롱나무가 새빨간 꽃을 피우고 있어 시선을 붙든다. 이 연못의 수분이 점찰산 깊은 계곡에서 아침저녁으로 내려오는 찬 공기를 맞아 이 일대를 안개로 자욱하게 덮는데, 이 모습이 장관이다. 운림산방이라는 이름도 이 신비로운 풍경이 마치 구름 숲과 같다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화실 안에는 허 씨 집안 3대가 그린 그림이 복제되어 걸려 있다.


운주사

운주사는 일반적인 사찰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절 주변으로 석불과 석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낯선 풍경이기 때문이다. 본래는 1,000구의 석불과 1,000기의 석탑이 있는 절이라 해서 천불천탑이라고 불렸는데, 현재는 석불 93구와 탑 19기만이 남아 있다. 운주사의 석불은 크기와 얼굴 표정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순박하고 친근하게 생겼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석탑 역시 모양도 층수도 제각각이다. 몸돌에는 X, V, //등 특이항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애석하게도 천불천탑을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있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국운을 바로잡으려고 하룻밤에 만들었다고 한다. 대웅전 뒤에는 공사바위라는게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천불천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만들 당시 이 바위 위에서 지시했다고 해서 이름도 공사바위다.


곡성 태안사

동리산이라 불리는 봉두산 서쪽 자락에 태안사라는 고색의 절집이 있다. 10여 동의 건물이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연륜이 깊은 절답게 적인선사탑, 광자대사탑과 탑비, 대바라, 대웅전 동종 등 보물급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태안사 옆으로 흐르는 태안사 계곡은 숲이 무성하고 계곡이 깊으며, 절로 인도하는 오솔길은 사색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산책로다. 경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능파각이란 누각식 다리가 계곡 위에 걸려 있는데,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어 수려한 풍경을 자아낸다.


화엄사

화엄사는 지리산 서남쪽 자락에 있는 고찰로 쌍계사, 실상사와 더불어 지리산을 대표하는 절이다. 이름은 화엄경에서 따왔다고 한다. 신라 중기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세조 때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다.


순천 송광사

조계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송광사는 해안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꼽힌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법보사찰, 통도사는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서 불보사찰,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절이라 하여 승보사찰로 불린다. 조계종의 발생지로 선수행의 도량이며 대웅전 뒤쪽에는 승려들의 선방인 수선사가 있다.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답게 규모도 상당하다. 크고 작은 불전이 무려 60여 동에 이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서인 고려고종제서를 비롯하여 목조삼존불감, 국사전 등의 국보급 문화재와 수많은 보물급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2010년 봄 길상사에서 입적한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했다.


낙안읍성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전통마을로 1908년 순천군에 통합될 때까지 독자적 행정구역인 낙안군의 중심지였다. 낙안읍성은 특이하게 벌판에 조성되어 있으며 둘레는 1.4km이다. 원래 토성이었으나 낙안군수를 지낸 임경업 장군에 의해 석성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성 안에는 낙안군 관아와 객사, 임경업 장군 비각 등이 있으며 낙안 저잣거리의 장터와 초가들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 마치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온 듯하다. 이들 초가 대부분은 지역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보존 상태도 좋고 깨끗하다. 저녁에는 밥짓는 연기가 곳곳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며 툇마루는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장독대에서는 된장과 김치가 익어가고 남새밭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있다. 사극 촬영용으로 만든 사극 세트장도 아니고 안동 하회마을 처럼 양반 마을도 아닌 민초들의 생활 터전이라 더욱 정겹다. 포근한 고향 마을 같다는 표현이 이곳만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곳도 드물다. 영화 <춘향뎐>과 <취화선>과 <광해 : 왕이 된 남자>, 사극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하다.


금둔사

금둔사는 동화속 별천지처럼 아름다운 절로 규모는 작지만 조경하나는 천하제일이다. 신선만이 넘나드는 비밀의 정원 같은 금둔사는 583년에 담혜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1979년 도굴로 파괴된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을 복원하고 1983년 선원사 칠전선원에 있던 지허화상이 복원 불사를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금둔사는 홍매화와 납매화 등의 매화꽃과 차로 명성이 높으며, 특히 남도에서 가장 먼저 매화꽃이 피는 절로 유명하다. 특히 납매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로 음련 12월에 핀다고 한다. 우리나라 토종 매화지만 이제는 금둔사에서 자라는 여섯그루가 전부일 정로도 희귀종이 되어버렸다. 지허화상은 복원 불사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나라 전통차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경내 3,000여 평에 차밭을 일구었으며, 현재는 9,000여 평의 지현다원을 거느리고 있다. 금둔사는 매화 향이 진동하는 봄이나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늦가을에 오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