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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적지 사찰 추천 Best 6

여행남 2020. 1. 16. 16:30

2020. 01. 16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시대 중심이 되는 법궁(정궁)으로 1395년에 세워진 이래 200년 가까이 조선 왕조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이후 오랫동안 터만 남아있다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5년 여의 대공사 끝에 완성을 보았다. 한때는 300동이 넘는 건물로 넓은 궁궐이 꽉 찼으며, 신무문 북쪽 청와대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조선 왕실의 상징이자 역사의 중심지로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은 경회루 다음으로 큰 목조 건물로 그 위엄이 대단하다. 근정전 북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인 경회루가 있으며, 경회루와 향원정은 조선 후기의 아름다운 조경 양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인들의 공간인 자경전과 교태전 부근에는 미적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 십장생도가 있으며, 흥례문 서쪽에는 국립 고궁박물관이 향원정 동쪽에는 국립 민속박물관이 있어 같이 둘러보면 좋다. 경복궁 관람권으로 이들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 태종 5년 (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졌다. 창경궁과 함께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리며 선조 이후 고종까지 파괴된 경복궁을 대신하여 조선 왕실의 역할을 했다.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제왕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이다. 창덕궁 뒤쪽에는 금원, 북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후원이 숨겨져 있다. 흔히 비원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때 궁궐 후원을 낮춰 부르기 위해 사용한 단어이므로 비원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창덕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후원은 아직까지도 비공개 구역이 많다. 오랫동안 비공개된 탓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서울 도심의 허파 역할을 제대로 한다. 창덕궁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관광지로 조선 왕궁의 아름다움을 천하에 뽐낸다. 창덕궁은 예전에는 가이드의 인솔 아래 지정된 입장시간에 들어가야 했으나 2010년부터 자유관람으로 변경되었다. 단 자유관람 범위는 인정전과 대조를 비롯한 창덕궁 중심구역이고, 후원을 보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물론 여전히 제한관람이다.


창경궁

창덕궁 동쪽에 자리한 궁궐로 조선 성종때 소혜왕후와 정희왕후, 안순왕후 등 세명의 대비를 위해 만든 궁궐이다. 창덕궁과 함께 동궐을 형성하면서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 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창경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각들은 주로 중간 부분에 자리해 있으며, 북쪽 부분은 춘당지란 연못을 중심으로 창경궁의 정원 역할을 하고 있어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기 좋다.


운현궁

고종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자 흥선대원군이 기거하고 임종을 맞는 곳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혼례)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 때 국유화되었으나 이후 대원군의 5대손 이청 씨에게 넘어갔다. 1991년 서울시에 양도되면서 수리를 시작하여, 1993년부터는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대원군이 집정할 당시 작은 궁궐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으나 지금은 노안당과 노락당, 이로당 등 대표적인 건물만 남아 있다. 운현궁 내부에는 당시의 생활상과 인물 등을 재현한 정교한 모형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곳곳에 잘 자란 나무들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덕수궁

서울시청 광장 건너편에 있는 덕수궁은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에 비해 나중에 지어진 궁궐이다. 원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로 임진왜란 때 임시 궁궐로 삼은 것이 오늘날의 덕수궁이다. 인조가 즉위한 이후 궁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다가 1897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삼으면서 덕수궁의 규모는 지금의 세 배 이상으로 넓어진다. 조선 궁궐 중 유일하게 석조전과 정관헌 등 서양식 석조건물을 2동이나 갖췄다. 특히 석조전은 완성하는 데 무려 9년이나 걸렸다. 고종이 말년을 보내다가 1919년 승하한 곳으로 창경궁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덕수궁은 돌담길이 매우 유명하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우수수 휘날리는 가을의 운치는 지나는 이들을 사색가로 만든다. 높다란 빌딩으로 가득한 삭막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덕수궁은 도심의 허파이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길상사

성북동 북쪽에 자리한 길상사는 우리나라 3대 요정의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대원각'에서 절로 변모한 전대미문의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대원각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던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통해 돈과 인생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법정에게 이곳을 절로 만들어 달라며 기증했다. 거절하는 법정에게 김연한은 8년 동안 끈질기게 기증 의사를 밝혔고 결국 법정은 이곳을 순천 송광사에 시주했다. 그 후 1997년 송광사의 옛 이름인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해 12월 14일 개원법회를 열면서 본격적인 길상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장전을 제외하고 대부분 요정 시절 건물을 개조했기 때문에 불전으로서 품격은 조금 떨어지나 건물들의 규모가 상당하다.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해 강당 역할을 하는 건물이 여럿 있으며, 도심 속의 아늑한 산사로 속세에 널리 개방해 찾는 이가 많다.